/ 신념의 모티프 <이재경>
세상에는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가 있고, 그러한 구도를 유지하려는 자와 붕괴시키려는 자가 있다.
종교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와 함께한다. 가진자들의 집단은 제로섬 게임인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재화와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많은 장치들을 고안해 내었다.
초기 토템, 혹은 신앙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 집단의 우두머리는 하늘의 뜻을 전달하여 자신의 권력을 합리화 시켰다. 많은, 약하고 우매한 사람들을 적지만, 강하거나 먼저 선점한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서(유리한)질서를 만들었고, 또한 그러한 구도를 합리화 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종교(즉 두려움에 관한 장치)를 사용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고, 정복하고 싶어하며, 편하고 싶어하고, 주변보다 나아지기를 원한다. 그정도 수준에서 인간의 습성은 인간의 역사동안 굳어졌다.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내면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강한 열망이 있고, 또한 사랑을 하고 또 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었다. 그러한 욕망들은 겉으로 드러난 부조리와 불합리에 맞설 ‘신념’이라는 강한 에너지를 합성했다. 아무리 가진자들이 억압하고 구도를 유지하려고 해도, 또 그렇게 억누르면 억누를 수록, 대상이 되는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는 불꽃이 피어났다. [종교]라는 장치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라’ 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신념에 눈을 뜬 사람들을 제압하기 어려웠다.
몇차례의 전복을 겪은 인류는, 이제 그러한 구도를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구조의 뒤편으로 모습을 감춘, 본연의 구도는 사회를 복잡하게 조직했다. 난해하게 조직했다. 결국은 실로 된 실타래인데, 무지하게 엉켜놓았다. 그 누구도 풀어낼 생각을 할 수 없을만큼.
초기에 많은 인간들 내면에서 부르짓었던 삶과 사랑에 대한 열망은 도무지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정도로 나뉘었다.
* 단어 – 서로간의 속성이 다른 다양한 것들을 하나의 단어로 묶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도록)
* 질서(제도, 법) -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을 사람들이 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예를들면, 사랑에 관한 예술과 종교에 관한 예술은 그 태생 자체가 다를진데, 그 모두가 하나처럼 보이게 구조화 되었다. 음악 미술 조각 등등 형태꼴이 닮은 것들끼리 속성에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묶어 놓았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는지 깨닫기 힘들어 졌다. 하도 복잡하다 보니, 그것을 풀 엄두를 내지 않게되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다보니 사람들이 단순해졌다. 우리속 원숭이들과 다를게 없어졌다. ‘대중심리’라는 보이지는 않지만 형성된(혹은 쇄뇌된) 행동강령이 사회를 지배하게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사회’ 라는 울타리 밖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정의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의 전복? 구조의 재구축? 권력의 움직임?
아니다. 개인적인 신념의 회복이다. 그 신념의 뿌리에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우주와 개체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한 개인적인 신념이 존재 했엇는가? 하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다. 어쩌면 단 한순간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것은 권력을 추구하는것 과 같은, 목표를 향한 발버둥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신념을 구축해야 한다는 많은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있다.
신념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리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자신( 육체 )에 대해서 이해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이해하며, 다른 동식물과 대화하는 것.
Your answer is matchless… :)
You, casually, not the expert?
Yes, I’m not the expert. I’m a student.
I think, I’ll always a non-expert person.
I’m just tr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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